강원도 동해안의 속초와 고성은 아름다운 해안선을 자랑하는 관광 명소이자, 오랜 역사와 전통이 깃든 음식 문화로도 유명합니다. 그중에서도 ‘가재미식혜’는 속초와 고성 지역을 대표하는 전통 발효음식으로, 독특한 맛과 건강에 이로운 발효 방식 덕분에 많은 이들에게 사랑받고 있습니다. 가재미식혜는 단순한 반찬 그 이상으로, 지역의 자연환경과 생활 문화, 역사적 배경이 어우러진 음식으로 평가받습니다. 이 글에서는 속초·고성에서 가재미식혜가 꾸준한 인기를 끌고 있는 이유를 만들기 과정, 역사, 지역 특색이라는 세 가지 관점에서 깊이 있게 조명해보겠습니다.
시간과 정성이 필요한, 장인의 손맛이 깃든 조리법
가재미식혜는 생선식혜 중에서도 만들기 까다롭기로 손꼽히는 발효 음식입니다. 주재료인 가재미는 강원도 지역에서 흔히 잡히는 생선 중 하나로, 살이 단단하고 지방이 적어 발효에 적합한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속초와 고성에서는 보통 자연산 가재미를 사용하며, 특히 가을과 초겨울에 잡은 것이 맛과 신선도 면에서 최고로 여겨집니다. 이 시기의 가재미는 기온이 낮은 바다에서 자라 육질이 더욱 단단하고, 비린 맛이 적기 때문입니다. 가재미를 먼저 깨끗이 손질한 후, 적당한 크기로 잘라 소금에 절입니다. 이 염장 과정은 최소 2~3일이 소요되며, 생선의 수분을 제거하고, 잡내를 없애주는 중요한 단계입니다. 염장이 끝난 가재미는 다시 물에 헹궈 소금기를 제거하고, 발효 준비에 들어갑니다. 식혜 밑국은 불린 찹쌀을 죽처럼 푹 끓인 뒤 식혀 엿기름을 넣어 단맛을 자연스럽게 우려냅니다. 이 밑국에 다진 마늘, 생강, 고춧가루, 파 등 기본 양념과 배·사과 같은 과일을 갈아 넣어 풍미를 더합니다. 일부 지역 가정에서는 미역줄기나 다시마, 심지어 톳 같은 바다 나물을 추가해 해조류 특유의 깊은 맛과 향을 함께 즐기기도 합니다. 가재미와 양념된 밑국을 잘 섞어 항아리에 담고, 약 4~6일간 발효시킵니다. 속초와 고성 지역은 겨울철 평균 기온이 낮고 공기가 깨끗해, 이 발효 과정이 자연스럽고 위생적으로 이뤄질 수 있는 최적의 조건을 제공합니다. 일부는 발효 도중 한두 번 뒤집어주는 과정을 거쳐 맛의 균형을 맞추기도 하며, 이때 발생하는 산미와 단맛, 매운맛의 조화는 집집마다 조금씩 다르기에 ‘우리 집 식혜 맛’이라는 말도 생겼습니다. 완성된 가재미식혜는 고소하면서도 톡 쏘는 발효 특유의 풍미가 특징입니다. 밥과 함께 먹으면 입맛을 돋우는 별미로, 특히 추운 겨울철에는 따뜻한 밥 한 그릇과 함께 한입 먹는 것만으로도 입 안 가득 강원도의 정취가 느껴진다고들 합니다.
생활의 지혜로부터 전통으로 이어진 발효의 유산
가재미식혜는 기록보다 구전으로 전해져 내려온 음식입니다. 조선 시대 이후 강원도 동해안 지역 어촌에서는 생선의 저장성과 풍미를 동시에 고려한 저장 발효 음식들이 발달했고, 가재미식혜 역시 그중 하나입니다. 정확한 기원은 알 수 없지만, 오랜 세월을 거치며 속초와 고성의 대표적인 겨울철 음식으로 자리잡았습니다. 당시에는 냉장 기술이 없어 생선을 장기 보관하기 위한 방법으로 소금에 절이거나, 발효를 통한 저장 방식이 널리 쓰였습니다. 특히 동해안에서는 찬 바람이 잘 통하고 온도가 낮아 자연 발효가 쉬웠기에 생선식혜 문화가 비교적 발달할 수 있었습니다. 그중에서도 지방 함량이 낮고, 육질이 단단해 쉽게 무르지 않는 가재미는 발효에 이상적인 재료였고, 그래서 ‘가재미식혜’가 이 지역의 대표적 생선식혜가 된 것입니다. 가재미식혜는 일상식이자 명절음식이었습니다. 설이나 추석, 동지 같은 명절이 다가오면 가정마다 식혜를 담그는 풍경이 연례행사처럼 이어졌고, 마을 어르신들은 자녀들이 오기 전 손수 식혜를 준비하곤 했습니다. 제사상에도 오를 만큼 정성과 상징이 깃든 음식이기도 했습니다. 20세기 후반 이후 산업화와 도시화로 인해 이러한 전통은 한동안 주춤했지만, 최근 들어 ‘로컬푸드’와 ‘발효식품’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가재미식혜의 가치가 재조명되고 있습니다. 강원도는 2000년대 중반부터 지역 특산물 발굴 사업의 일환으로 가재미식혜를 관광 연계 상품으로 개발했고, 지금은 관광지 기념품, 온라인 쇼핑몰 상품으로도 다양하게 소비되고 있습니다. 일부 마을에서는 여전히 ‘식혜 담그기’ 체험행사를 운영하며, 전통의 가치를 후손들에게 이어주는 노력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청정 자연과 공동체 문화가 만들어낸 맛의 정수
속초와 고성 지역은 단순히 가재미가 많이 잡히는 해역일 뿐 아니라, 발효가 잘 이뤄지는 기후적 환경과 식문화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곳입니다. 강원도 동해안의 겨울은 낮은 기온과 해풍, 그리고 높은 일교차가 특징인데, 이러한 조건은 발효 미생물의 활동을 조절하고, 위생적인 숙성을 가능케 합니다. 이 지역에서 생산되는 가재미식혜가 특히 깔끔하고 깊은 맛을 내는 이유도 바로 이 ‘천혜의 자연환경’ 덕분입니다. 또한 속초와 고성은 여전히 공동체 기반의 전통문화가 남아 있는 지역입니다. 마을 단위로 함께 음식을 만들고 나누는 문화가 이어지며, 특히 가재미식혜는 겨울철 공동 작업으로 불릴 정도로 마을 사람들이 함께 만드는 일이 많았습니다. 예전에는 동네 어르신들이 한 자리에 모여 가재미를 손질하고, 양념을 섞고, 발효 항아리를 함께 묻는 등 하나의 공동작업처럼 진행되었고, 이러한 경험은 공동체 결속에도 큰 역할을 했습니다. 현대에 들어서도 이 전통은 다양한 형태로 남아있습니다. 일부 식당에서는 가재미식혜를 반찬으로 제공하거나, ‘식혜정식’이라는 이름으로 메뉴화하고 있으며, 시장에서는 포장된 형태의 식혜도 쉽게 구매할 수 있습니다. 속초 중앙시장이나 고성 5일장 등지에서는 진공 포장된 가재미식혜 제품을 판매하고 있어 관광객들 사이에서도 인기 있는 강원도 특산물로 자리매김하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젊은 요리사들과 푸드스타트업에서는 가재미식혜를 활용한 퓨전 요리도 시도하고 있습니다. 식혜를 곁들인 크래커, 비빔면, 바질페스토를 가미한 가재미식혜 무침 등 전통에 현대적인 감각을 더한 요리들은 가재미식혜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으며, 젊은 층의 관심도 불러일으키고 있습니다. 결국, 속초와 고성에서 가재미식혜가 인기를 끌 수 있었던 이유는 단순한 ‘맛’ 이상의 가치 때문입니다. 이 지역의 자연, 사람, 문화가 오랜 세월을 통해 축적되며 만들어낸 음식이기에, 이 가치를 이해하고 맛보는 것만으로도 강원도의 전통과 삶을 깊이 체험할 수 있습니다.
가재미식혜는 속초와 고성의 자연환경, 역사적 맥락, 공동체 문화가 어우러져 탄생한 대표적인 지역 발효음식입니다. 단순히 생선을 절여 발효한 음식이 아니라, 지역민들의 삶 속에 깊이 녹아든 지혜와 정성의 결정체입니다. 전통의 방식으로 만들어진 가재미식혜는 계절마다 조금씩 다른 풍미를 보여주며, 시간이 지날수록 더 깊은 맛을 자랑합니다. 강원도 여행을 계획하고 있다면, 꼭 속초나 고성을 방문해 현지에서 직접 만든 가재미식혜를 맛보고, 가능하다면 전통 방식의 담그기 체험에도 참여해보시길 추천드립니다. 진정한 지역의 맛과 전통을 경험하는 소중한 시간이 될 것입니다.